'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시리즈의 진화
시리즈의 진화
<혹성탈출>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었다. 심지어 진화된 모습으로 등장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리즈 밖이 아닌 안에서 찾았다. 시리즈 이전으로 돌아가 ‘왜’부터 재시작 한다. 원작이 비추지 않았던 이야기다. 원작의 충격적인 결말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리퀄은 원작을 쫓는 영리한 방법임엔 틀림없다. 물론 잘 만들어 졌을 경우에만.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프리퀄의 의미를 넘어섰다. 시리즈 후속의 의미를 넘어 원작과 함께 길이 남을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유인원이 어떻게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유인원이 지구를 장악하는 창세기를 생생하게 목격하는 쾌감. 시저가 입을 떼고 “No"라고 토해내는 순간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 짜릿함을 선사한다. 시저가 동족을 이끌고 그들의 세상을 여는 순간이다. 인류사에서 어떤 혁명을 이순간과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떤 혁명 못지않은 시저의 고뇌와 의지는 시리즈의 시작이자 영화의 중심이다.
진화된 모습에는 기술력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자연스러운 CG와 유인원들의 디테일한 움직임. 특히 시저의 감정표현은 놀라울 정도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CG는 감정표현에서 가장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탄탄한 이야기에 훌륭한 연기, 게다가 섬세한 CG를 장착해서 쉽게 잊지 못할 작품이 탄생했다. 원작을 잇는 명작이라 할만하다.
시저는 진화해가면서 현실을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시리즈의 존재를 안으로 고민하면서 이야기의 길을 안에서 찾았다. 외적인 팽창보다는 이야기의 근본을, CG의 화려함보다는 섬세함을. 진화하는 유인원만큼 시리즈도 점점 진화해갈 것이다. 시리즈의 진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진화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하다.
(시저는 인류의 첫 모습 같기도 하다. 문명의 편리함과 뛰어남, 그리고 오만과 나태. 문명의 양면성은 인간의 양면성이기도 하다. 문명의 충돌은 그렇게 일어나고 정복과 대립은 반복된다. 유인원과 인간의 대립은 입장을 서로 바꾸면서 계속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처럼. 인간과 시저,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 모습일까. 인간의 문명과 시저의 혁명, 어느 쪽이 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일까. 인간의 구분과 정의가 조금 모호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