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악마를 지켜주는 역겨운 사회
악마를 지켜주는 역겨운 사회
선정적이니 뭐니 없는 트집 잡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발악은 외면하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영화를 바라보자. 견디기 힘들지만 이것이 누군가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는 모르고 싶은, 누군가는 감추고 싶어 하는 더러운 현실이다.
<악마를 보았다>의 악마는 그래도 영화니까 견딜만했다. 하지만 <도가니>의 악마는 진짜다. 지금도 우리와 같은 하늘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잘 살고 있다. 사회의 역겨운 그림자는 악마를 철저하게 보호하며 이 사회의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믿기 싫지만 이 쓰레기 같은 악행은 우리 곁에서 일어난 사실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심한 악취를 풍기며 어디선가 썩고 있을 것이다. 사실보다 몇 배는 축소했다고 하니, 진짜는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영화 내내 감정을 끓게 만든다. 분해서 입에서 욕이 나올 지경이다. 악한 역을 맡은 배우를 실제로 만나면 곱게 쳐다보진 못할 것 같다. 관객의 감정을 이토록 증폭시키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도가니>는 고발성이 짙은 영화다. 한 영화 안에서 얼마나 많은 범죄가 발생하는지, 추악한 사건은 줄에 줄을 타고 끊임없이 밝혀진다. 영화에서 밝혀진 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직업을 뇌물 받고 파는 놈, 돈 받고 눈감아 준 놈, 전관예우라는 말도 안 되는 특혜로 판결하는 놈, 성공에 진실을 판 놈,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놈들, 악마 편에 서서 하느님이 지들 기도 들어 줄줄 아는 놈들, 눈감고 귀 닫고 반성할 줄 모르고 더 당당한 놈, 고작 폭력으로 진실이 가려질줄 아는 놈들, 연줄이 법인 줄 아는 놈들, 그리고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비겁하고 추악하게 욕구를 채우려는 짐승만도 못한 놈. (여자고 남자고 하도 많아서 '놈'으로 통일. 더 거친 표현을 쓰고 싶지만 참는다.) 현실은 이보다 더 많은 사건으로 가득 차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건을 고발했지만 영화는 감정을 아낀다. 그리고 끝은 현실처럼 무력하다. 그래서 관객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영화 속 절약된 감정의 빈공간은 관객의 감정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도가니>의 힘이 아닌가 싶다. 배우들 또한 주연, 조연, 아역 가리지 않고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속 사건들, 우리가 한두 번 보고 들은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끝은 영화처럼 무력했다. 이번에도 뭐 그리 다르겠냐 만은 꺼져 가던 사건에 다시 불을 밝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아이들의 인생을 망쳐놓은 악마는 미약한 처벌만 받고 잘 먹고 잘 산다고 한다. 다시금 들춰진 진실들과 우리의 목소리가, 영화를 봐도 눈 하나 깜짝 안할 악마를 사지로 몰아넣길 바란다.
사회의 이 역겨움을 정면으로 지켜본 관객들은 분노의 도가니 속에서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건 사회는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을 것이며 우리는 거대권력의 악마를 죽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겁나서 대부분의 약자는 옳고 그름을 알아도 등 돌려야 한다는 것. 나를 보며 그 부끄러움에 더 화가 난다. 그래서 이 대사가 더 처절하게 다가온다. “당장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는 게 아니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지.”
시청, 구청, 교육청, 경찰, 검찰 모두 옹졸한 소관타령 그만하고 이 사건의 뿌리를 뽑길 바란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