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moai/film rev2012. 4. 2. 01:05

 

   

 

 

 

 

그 시절 나와의 대화 그리고 위로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이다. 어설프고 뭣도 몰라서 완벽할 수 없었고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찼던 시절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답답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한 첫사랑의 늪 때문에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실패했거나 시작조차 하지 못했거나, 미완으로 영원히 남기 때문에 더 아련하고 애틋하다. 되돌릴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건축학개론>의 승민도 그렇다. 누군가의 추억처럼 조그만 것에 크게 상처받고 겁나서 도망갔다. 첫사랑은 누구도 아닌 자기가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승민, 아득바득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하얗고 눈부신 첫사랑의 판타지가 찾아왔다. 판타지라고 한 것은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고 너무 변해버려 이룰 수 없기 때문. 뽀얀 첫사랑의 추억을 지금 현실의 칙칙함으로 더럽힐 수 없다는 본능이 있는 것도 같다. 하드용량만큼이나 너무 많이 변해버린 세상에서, 그만큼 변해버린 첫사랑을 마주하길 원치 않는다. 그저 아주 멀리서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며 위로 하는 것, 그 시절 나의 첫사랑과 대화하는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그 추억을 꼭 쥐고 지금의 삶을 짓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수업시간에 첫 만남, 수업과제로 친해지며 데이트한다. 참 평범한 일상적이라 누구에게나 내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을 하게한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빠지고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특히 체감판타지로 남성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익숙한 공감과 감성을 다루는 연출도 세심하다. 많은 이들의 첫사랑으로 군림하게 된 수지와 순수한 눈빛의 감성연기로 빛난 이제훈의 연기는 관객의 감성을 요동치게 한다. 내모습인 것 같은 승민과 내 첫사랑인 것 같은 서연이 만들어준 판타지 때문에 <건축학개론>을 남성용 멜로영화라 부르고 싶다. 또한 90년대를 다루는 능숙함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삐삐, CD플레이어, 전람회, 펜티엄, 무스 등. 그저 향수를 자극하는 소모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와 능동적으로 결합해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단비같은 멜로영화

 

 과거와 현재는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사랑을 설계하고 짖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습작에 불과했던 첫사랑을 제대로 지을 수 없었던 것은 겁나서 다가가지 못해 서로를 몰랐기 때문이다. 좋은 집을 지으려면 집주인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듯 떨어트려놓는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삶을 설계한다.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없고 현재는 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입은 짝퉁티셔츠처럼 다시 입을 일 없는 첫사랑. 다만 짝퉁티셔츠를 바라보며 과거 승민을 안아주고 위로할 뿐이다.

 

 엄태웅, 한가인의 안정된 연기, (한가인은 최근 연기력논란에 휩싸였었지만 <건축학개론>에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첫사랑의 순수함을 여지없이 발산한 수지와 영화에 풍부한 감성을 흐르게 한 이제훈. (이제훈이 가장 돋보였다.) 그리고 이야기와 감성을 다루는 감독의 감각을 재확인했다. 게다가 새로운 신스틸러 조정석의 탄생. 한국영화판에서 멜로장르는 성장이 더딘 것이 사실이었다. <건축학개론>은 그런 한국멜로영화판에 단비가 되기에 충분한 영화다.

 

 

 

 

 

술 한 잔 생각난다

 


 <건축학개론>은 남자들에게 술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작정하고 감정이입하며 추억의 환상 속을 헤매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흐르는 ‘기억의 습작’이 끝날 때까지,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위로한다. 울려 퍼지는 기억의 습작과 함께 깊은 아련함에 여운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찌질하고 어설펐던 그 시절을 주절거리며 그 시절 나를 안아주고 싶다. 쌍년이라며 현재에 충실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먼지 쌓인 내 습작을 향한 끝없는 부정과 자책이다. 추억은 지워진다고 지워지는 것도 되돌린다고 되돌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추억을 품에 안고 다른 삶과 사랑을 설계하고 지어나갈 뿐이다. 그 시절의 서툰 습작이 있었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몇 번을 되새겨도 지겹지 않은 첫사랑의 습작이지만 아련하고 쓸쓸해진다.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삶은 여전히 어설픈 습작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서일까. 어설퍼도 지겨워도 집은 집이고 사랑은 사랑이다. 다시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하며 “괜찮아 임마”

 

 


 (그런데 엔딩크레딧 중간에 끝내거나 문 좀 열지 맙시다. 노래 끝까지 듣고 싶은 관객 많습니다.)



 

 

key: 첫사랑, 추억, 기억의 습작

 

(포스터 및 스틸 출처 : Daum)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Posted by 김귤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