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moai/film rev2012. 12. 16. 00:26

 마주하기 힘들지만 마주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고통, 비명. 당시 그 처절한 아픔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연출은 더도 덜도 말고 그대로를 그려내기 위해 애쓴다. 잔재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돌파하는 정지영 감독의 연출이야 <부러진 화살>때처럼 변함이 없지만 이번엔 더 우직하고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니다. 고문실 내의 묘사와 그 안에서의 캐릭터를 다루는 태도에서 더욱 그러하다. 비명소리, 라디오, 고문기구 등 고문실 구석구석까지 “당시 역사는 이러했다”라며 조곤조곤 힘주어 말하는 듯 하다. <남영동1985>는 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적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고문실 안에서만 영화 거의 대부분을 보낸 이 영화가 적잖은 활력으로 영화적 흥미로움을 잃지 않았던 것은 고문실 직원 각각의  캐릭터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경영이 연기한 고문기술자 이두한은 그 어떤 고문영화의 가해자보다 섬뜩하게 스크린을 지배한다. ‘지린다’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 박원상과 이경영의 연기에 아낌없는 감탄을 보낸다. 열연 그 이상의 강력한 의미를 남겼다.


김종태가 자괴감과 수치심에 빠져 죽음의 고통에 처해있을 때 한명은 여자친구문제로 고민하고 한명은 라디오 스포츠중계에 열을 올리며 야근에 지켜 어서 퇴근하고 싶어 한다. 먹고 살기 바빠 하루하루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고문실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한 공간’을 이루는 이 아이러니함. 김종태와 고문실이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고문실 직원들의 캐릭터는 영화적 장치를 맡고 있다. (물론 고문 자체의 잔인함과 고문기술자들의 행위가 영화적 픽션이라는 말은 아니다. 첨가된 캐릭터가 영화적 존재감을 유지시켜준다는 말.) 영화는 잊지말아야할 고문실의 역사로 과감히 안내한다. 영화적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 거침없이 그려낸 고문실의 풍경. 여기에 인간은 없었다. 고문을 당하는 자나 가하는 자나 모두 자신을 외면한 채 ‘인간임’을 버리게 되는 곳. 고통과 두려움, 수치심 앞에서 무너져가는 신념과 인간성. 김종태는 육체적 고통보다 자기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고문은 가하는 자 역시 피해자라면 피해자다. 모두 우리주위에서 볼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계속되는 고문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인간성을 훼손당하면서 기계처럼 고문기술자가 되어갔다. 고통과 혼란, 어느 쪽이나 인간임을 끝내 포기하게 만드는 잔혹한 공간. 아픔이 진하게 전해져 온다. 야만과 고통만이 존재하는 이 모순된 공간을 마주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잔혹한 실화가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 이 역사를 다룬 고문영화가 그 어떤 고문영화보다 강력하다는 이 무서운 현실. 아직 이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한다. 하지만 개봉관 수는 많지 않을 것이고 끝나지 않은 역사를 우리는 다시 또 잊을 지도 모른다. 뒤돌아 볼 틈 없는 이 팍팍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망각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 과정을 다시 되풀이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이 영화에 감사한다. 1985년을 불러내줘서. 똑바로 응시하며 영화의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시작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영동1985>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보다 인간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비인간적 과거사가 아직 현재와 단절되지 않았다는 경각심과 함께.

 

key: 고문, 유신, 인간, 대한민국 역사, 1985년 남영동, 현대사, 고문기술자 

(포스터 및 스틸: Daum)

 


남영동1985 (2012)

Namyeong-dong1985 
9.2
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김의성, 서동수
정보
드라마 | 한국 | 106 분 | 2012-11-22

 

Posted by 김귤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