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moai/film rev2013. 1. 2. 00:10

 

 

화도 역사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제작이 돌연 중지되었고 거론되었던 감독과 배우는 교체되었다. 영화화 작업은 난항을 겪으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26년>의 제작은 공중에 붕 떠버렸고 영화제작에 대한 염원과 간절함은 더욱 커져갔다. 큰손이 아닌 수많은 작은 손들이 모여 영화제작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여러 유명인들의 제작후원은 촉매제가 되었다. 내용에서부터 영화제작과정까지 <26년>은 작품 이상의 책임과 의미를 짊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만들어도 관객을 완벽히 만족시키기 힘든 영화, 무조건 잘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 많은 관객이 봐야 하는 영화가 되어버린 <26년>은 정말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영화다. 이렇게 영화 <26년>은 탄생과정 부터가 영화였으며 영화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었고 ‘그날’을 있게 한 ‘그 사람’은 사과 한마디 안하고 있다.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주무르며 잘 살고 있고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스런 기억을 무겁게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끝나지 않은 역사다. 영화는 현재진행형인 이 역사를 잊지 말자고 외친다. 복수의 쾌감이 아니라 한없는 좌절과 위로가 아니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성실히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때문에 <26년>은 냉정한 시선으로 영화적 내구성을 논하기 힘든 영화다. 영화 내내 감정이 넘치고 울화가 치민다. 이것은 영화 속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정에 의한 것이다. ‘그 사람’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도 간절하게 외친다. 어서 쏘라고 빨리 죽이라고. 영화의 내용보다 영화를 둘러싼 역사와 아픔에 관객은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26년>의 에너지가 ‘그 사람’과 관객의 능동적 감정 외에 영화적 완성도에서도 분출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강풀 원작의 영화화에서 모두 겪는 난관. 넓고 많으며 촘촘하기 까지 한 에피소드와 세심하게 서로 이어진 감정선과 이야기들. 이를 축약하며 성실히 스크린으로 옮기며 얇아지는 감성과 단순해지는 이야기, 힘을 잃는 개연성. 강풀 원작의 거의 모든 영화가 그랬고 <26년>도 이런 시선을 피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성은 약하고 원작을 성실히 전개시키는 것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공감, 교감, 당위성 모두 작전에 쫓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영화의 진심을 충분히 느껴지지만 치밀하지 못했다. 더 많은 관객을 모으려면 관객은 분노해도 영화는 냉정했어야 했다. 영화의 목소리를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가장 좋은 길은 영화의 완성도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에서부터 관객은 <26년>을 이미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어렵게 힘들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관객의 감정은 이미 쌓여지고 있었다. 29만원밖에 없다는 그 사람이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이 현실 때문에,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이 현실 때문에. <26년>은 투박하고 허술하지만 최선을 다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강풀과 많은 사람의 성원 그리고 배우들에 의해서 말이다. 518에 대한 아픔과 위로를 그리는 영화는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518 ‘그날’의 시발점인 ‘그 사람’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영화가 있었던가.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역사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영화가 있었던가 말이다. 언제까지 영화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간절함과 울분을 토해내야 하는 현실이 계속 될까.
영화도 역사도 끝나지 않았다. 마무리 될 수도 없다. 영화는 잊지 말자는 진심을 던져 줬을 뿐. 관객의 감정과 생각, 간절함이 영화의 진심을 스크린 밖에서까지 이어줄 것이다. 영화는 이어주는 다리일 뿐이다. 비극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외면할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이 기억을 간절하게 붙잡으면서. 

 

key: 강풀원작 26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29만원, 역사

 

(포스터 및 스틸: Daum)

 

 

Posted by 김귤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