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moai/film rev2013. 2. 12. 01:52

 

 

액션의 진화, 시리즈를 기대한다!

<부당거래>부터 류승완 감독이 “뭔갈 작정했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작정했던 열망의 결과물은 바로 <베를린>이었던 것.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로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액션을 버리고 오직 연출과 이야기만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이전 작들로 액션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바, 이제 인정받은 이야기연출과 그의 액션에 대한 열망을 함께 보여줄 차례. 바로 <베를린>의 차례다. <베를린>은 이렇게 류승완 감독이 액션과 이야기를 함께 다루는 방법의 진화, 그 정점에 있는 영화다. 액션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이야기하는 능력을 성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베를린>은 그 이후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큰 이야기는 기본 첩보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뜻 떠오르는 것은 본시리즈다. 국가와 개인의 대립. 그렇다고 <베를린>이 여러 첩보물들의 설정을 답습했느냐. 이 질문에 쉽게 수긍해주기도 힘들다. 남북의 이념대립. 분단국가 한국의 현실과 분단의 상징을 제대로 적절히 활용해 온전히 대한민국스러운 첩보물이 탄생한 것이다. 비록 <베를린>에서 이념대립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류승환 감독의 액션이 진화했다는 증거는 바로 이런 이야기 속에 액션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덕지덕지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액션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일부가 되도록 말이다. <베를린>의 액션을 보면 이야기, 캐릭터, 감정 표현의 도구로 액션이 활용됨을 알 수 있다. 철저하게 사지로 내모는 표종성의 액션이 그의 고독을 표현하는 것처럼. 류승완과 정두홍의 생짜 맨몸액션이 주는 쾌감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뭔가 정리되고 절제된 액션신이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것은 작정하고 몸을 던진 배우들과 류승완, 정두홍의 ‘맨몸 액션정신’ 때문이다.
<베를린>은 류승완과 정두홍의 액션에너지만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다. 하정우의 캐릭터, 바로 표종성. <추격자>때도 그랬고 <황해>때도 그랬지만 하정우의 생고생장면은 그만의 지독한 서러움의 이미지가 있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느낌이다. 다른 영화에서의 생고생은 배고프고 쫓기고 추위에 떠는 등 이었다면 <베를린>에서는 액션이다. 구르고 터지고 쓰러지고 떨어지고 등등 하정우는 액션캐릭터 역시 지독하게 쌩고생한다. 다만 집나간 식욕도 돌아오게 만드는 그의 먹방이 없는게 아쉽긴 하다만. 얼마나 맛깔나게 먹었길래 감독이 편집까지 하나. 그리고 이걸 또 지독하게 소화해낸다. 처절한 액션과 묵직한 감정을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내며 표종성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는데, 표종성이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액션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영화에서 시리즈 하나를 책임질만한 블록버스터캐릭터의 탄생인가.
하정우의 연기만이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훌륭하다. 류승범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로 동명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전지현 역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하나의 축을 이룬다. 한석규는 캐릭터와 배우가 조합하여 얻을 수 있는 시너지의 최고를 보여주며 빛을 발한다. <쉬리>에 각인된 이미지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베를린>은 남북 이념대립이라는 소재를 풀어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뻔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심히 무게를 잡지도 않는다. 남과 북의 대립으로 시작해 국가와 개인의 대립이라는 본론을 펼쳐나간다. 정진수와 표종성, 국가를 위해 일했던 이들은 국가에게 버림받는다. 이렇게 보면 정신수의 빨갱이타령과 표종성의 순진한 충성심은 묘하게 닮았다. 시간에 뒤쳐진 이들의 모습. 이들을 뒤처지도록 이용하는 진실과 음모. 정진수는 아마도 표종성에게서 버려진 혹은 뒤쳐진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보통 욕심이 과하면 무슨 일이든 망쳐지기 마련. 특히 영화는 힘을 빼고 만들었을 때 찬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베를린>은 감독의 과한 욕심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만큼 작정하고 철저히 준비했고 단단히 맘먹고 진화해왔으니까 가능한 결과. 배우, 액션, 이야기, 연출 등 감독이 갖춘 그리고 준비해온 모든 것이 진화해왔고 그 정점이 서로 만난 지점에서 <베를린>이 탄생했다. 중요한 것은 이 진화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종성의 본격적인 행동을 알리는 <베를린>의 마지막처럼. 류승완 감독의 진화도 이제 시작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시리즈를 기다릴 수밖에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Key: 류승완, 정두홍, 액션, 하정우

 

(포스터 및 스틸: Daum)

 

Posted by 김귤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