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연결하다, 장르를 연결하다
시간여행이란 소재는 언제 봐도 호기심과 상상력을 펼쳐나가기에 아주 매력적인 소재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퍼즐을 맞추며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 다양한 장르로 진화가 가능하다. 물론 SF라는 꼬리표는 달고 다니지만. 반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쉽지 않은 소재이기도 하다. 치밀하지 않으면 허점이 생기기 쉽다. 앞뒤 보지 말고 시간여행을 쏘다니다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이야기가 막장으로 흘러가기 마련. <루퍼>는 이 치밀함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사실 시간여행의 설정이나 기본법칙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야기를 쌓아가는 스타일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루퍼>는 여기서 새로움을 모색한다.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기존 시간여행 영화들과 달리 치밀한 이야기로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줬다.
<루퍼>는 영화의 배경과 설명을 이해시키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보통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의 이 시간은 지루하기 마련인데 <루퍼>는 끊임없는 이야기의 변주로 긴박함을 만들어 낸다. 볼거리 위주 그저 그런 액션영화였다면 하품 나오기 딱 좋은 준비동작 타임. 역동적인 눈요기가 아니라 역동적인 이야기도 영화를 창조해 냈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배우들의 연기. 조셉 고든 레빗은 브루스 윌리스와 맞닿아 보일정도로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다.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 또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장치는 시간을 연결하기도 하며 장르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루퍼>의 치밀한 이야기는 SF적 상상력을 중심에 두고 액션과 스릴러, 드라마의 재미를 모두 찾아내고 만다. 장르간의 연결을 꾀하면서 취해야 할 것은 다 취했다. 미래 악당이 될 아이를 제거해야하며 미래의 자신 또한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선악은 분명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선악은 관객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듯한 뉘앙스. 혹은 누구나 선이며 악이라는 외침.
SF 시간탐험이라 하면 휘황찬란한 CG를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루퍼>는 그런 눈요기 따위는 필요없다는 쿨함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미학적 부분에서 한 치도 뒤지지 않는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속의 SF, 쿨하고 근사한 드라마와 괴기스럽고도 품격이 함께하는 액션 스릴러. 장르간 연결은 영리하고 전개는 근사하다. 고품격 시간여행SF물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
(포스터 및 스틸: DAUM)
Key: 시간여행,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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