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을 보다 혼혈인의 삶을 생각하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와 함께 찍은 옛날 사진을 보며 창국은 눈물을 흘린다.>
영화 '수취인불명'은 기지촌 혼혈인 창국의 상처받은 삶을 처절하게 그린 영화다. 1970년대 미군지기 맞은편 마을, 빨간 미군버스에서 창국모와 창국은 살아간다. 양동근이 연기한 혼혈인 창국은 개잡는 일을 하면서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그를 유일하게 받아주고 창국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개장수 개눈조차 세상과 섞여 사는 인물은 아니다. 미국에 사는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는 믿고 싶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만 돌아오는 수취인불명 편지처럼 그들의 희망은 힘없이 돌아올 뿐이다. 김기덕 감독 특유의 간절하고 견디기 힘든 어법으로 창국 혼혈인의 삶을 더욱 절망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기지촌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혼혈인들의 시발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생겨났고 성매매, 계약동거, 결혼, 강간 등 기지촌 여성들과 미군들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혼혈인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창국은 개눈의 오토바이 뒤 창살로 된 개집 안에 들어가 짐짝처럼 이동한다. 이처럼 창국에겐 '사람취급'이 어색하다. 정미소에서 냉대를 받으며 일한 당연한 대가, 보수를 받은 것이 영화 속에서 창국이 가장 밝은 부분이다. 인간에 대한 당연한 대우가 창국에겐 없었던 까닭이다. 인권? 창국은 이단어가 무슨 뜻인지나 알까.
<창국에겐 '사람취급'이 어색하다.>
혼혈인을 향한 차별은 그들을 지칭한 용어에서부터 시작한다. 창국은 '튀기'라고 불린다. (튀기는 종이 다른 두 동물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뜻한다.) 혼혈인을 비하하는 용어다. 이뿐만 아니라 '깜둥이', '노랑머리', '코쟁이', '양키' 등 인종차별적 용어를 우리는 가볍게 여기고 있다. '나는 인종차별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이런 용어들로 한국인과 다른 인종 사이에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쯤 되면 인종차별은 우리의 습관이다.
혼혈인을 향한 멸시는 그의 부모에게로 까지 향한다. 창국의 하나뿐인 혈육인 창국모는 '양공주'란 비난을 받는다. 출생부터 차별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차별의 대물림 아닌가.
비난과 따돌림은 혼혈인들을 사회부적응자로 만들고 특히 청소년기의 혼혈인들은 학교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고립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되고, 폭력에 노출되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방어하게 된다. 극중 창극 역시 공격적인 모습을 창국모를 향해 그대로 보여주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지흠을 괴롭히는 양아치들을 폭력으로 제압한다.
이런 차가운 사회 속에서 혼혈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출생배경, 피부색, 그로인한 학력 포기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창국은 피부색까지 다르니 직업을 선택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이 아닌 끌려간 직업은 개장수였고 그 일에서조차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가 찾은 다른 일은 겨우 정미소에서 쌀자루를 옮기는 일용직이었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혼혈인들의 직업은 대개 남성의 경우는 일용직 건설노동, 유흥업소 종사자 등이고 여성의 경우는 성매매여성, 유흥업소 직원 등이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 이며 자신의 인적 관계망으로 취직을 한다 해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창국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기지촌이 그 정도였다. 기지촌 밖은 더 가혹할 것이다.
이 차별들은 단지 창국의 삶을 통해서 본 것일 뿐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무섭다. 병역, 결혼, 자녀출산, 범죄, 성폭력, 경제 등 무수한 차별들이 혼혈인 생애 내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혼혈인들의 인권을 보호할 장치는 마땅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혼혈인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문제와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혼혈인들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비딱하게 보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다. 인종차별이라는 해묵은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결론은 식상한 것 아닌가. 혼혈인들의 인권을 보호해줄 강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참 식상하지만 나라님들 몰라주는 해결책이다. 혼혈인들이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법적 사회적 지원망일 텐데 의원님들은 선거용 법안에만 관심 있으시다.
나라고 떳떳할 수는 없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건 '인식'이다. 이 또한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런 글을 써야 하며 이렇게 외쳐야 하는가. 이제 인종차별은 바다건너 다른 나라 이야기며 옛날보다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들의 환상이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혼혈인들의 소외된 어린 시절은 대물림되어지고 있다. 창국의 분노를 누가 만들었는가.
더불어 인종차별의 사고를 무의적으로 주입시키는 교육과정도 문제로 삼고 싶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선 주먹구구식에 독도 지키기에도 소홀하면서 그놈의 배타적 민족교육은 지겹지 않은가.
창국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모든 혼혈인들은 한국인이다. 월드컵이면 같이 대한민국을 응원해줄 같은 나라사람이다. 우리나라사람이 우리나라사람에 의해 고립된 채 외로운 삶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창국처럼 말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냉혹하고 잔인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혼혈인들은 '수취인불명'이 찍힌 돌아온 편지처럼 같은 나라사람들이 외면하고 버린 희망을 보며 그들의 삶을 '연명'하고 있다.
물론 '수취인불명'속 시절보다 인식이 훨씬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인식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에 본 인터넷의 글은 흥분속에서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죽고 싶다고 말한 것. 드러나지 않은 우울한 현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각종 편견의 벽을 허물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단 것도 알게 되었다.
두서없이 오버스럽게 쓴 이 글이 아무런 영향력도 갖추지 못하겠지만 더 살만한 대한민국을 위해 0.0000001%라도 의미있는 목소리가 되었길 바라는 소심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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