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tre moai/film rev2013. 3. 23. 21:48

 

 매혹과 잔혹, 피로 물든 성장통

 

스크린 구석구석 박찬욱 감독의 손길이 느껴진다. 배경, 조명, 앵글, 편집, 소품 등등 색감에 리듬감까지 하나하나 고민하고 세밀하게 다듬었음을 알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완벽함은 할리우드 방식을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난 것 같다. 박찬욱이 아니라 할리우드가 그의 완벽함에 길들여졌을 뿐. 복수와 욕망, 미학적 폭력적 미장센, 할리우드가 아닌 온전히 박찬욱에 의한 것이다. 

<스토커>는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영화다. 상징과 해석이 난무하는 이미지들로부터 이야기는 발생된다. 운동화와 구두, 거미, 흔들리는 지하실 조명과 냉장고, 아이스크림, 벨트 그리고 사냥 등. 대사와 행동으로부터 발생되는 이야기보다 이미지로부터 생성되는 이야기가 더 풍성하다. 

배경도 집, 학교 등 몇 곳으로 제한되어 있고 캐릭터도 많지 않다. 닫혀있고 활동적이지 않은 화면 화면들이 풍성한 이야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많은 은유와 상징 때문이다. 쉼 없이 오고가는 편집들은 소름 돋을 지경이다. 이건 현란함의 뽐냄이 아니라 치밀한 세공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세련된 편집들로 또 다른 의미의 볼거리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 내내 나열되는 묘한 이미지들 역시 치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하나 계획된 박찬욱의 치밀함이다. 이제껏 그의 영화는 쭉 그래왔으니까. 한국의 것과 달라진 점이 아주 없진 않다. 바로 유머가 없다는 것. <스토커>는 시종일관 차가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폭력조차 차갑다. 아마도 할리우드와 대한민국의 차이가 주는 유일한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농도가 짙고 세다. 박찬욱의 스타일이 더욱 견고해진 느낌이다. 이것은 대사, 행동, 자극적 폭력에 빚지지 않고 오로지 은유와 상징들로 이루어낸 성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

예상했던 대로 <스토커>의 흥행은 쉽지 않다. 견고해진 박찬욱의 스타일만큼 취향은 더욱 극명하게 갈릴 것이고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할리우드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그만의 스타일로 스크린을 확실히 장악했다는 그 점에 더 주목하고 싶다.

 

 

나름의 의미부여 (스포 있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제목 ‘스토커 (Stoker)'는 스토커 가족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기보다 ’Stalker'의 의미를 담은 이중의미의 제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맞다...기 보다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는 해석 정도?) ‘Stalker'의 의미 중에서도 사냥꾼이란 의미. 그렇다면 누가 사냥꾼인가. 찰리 삼촌을 사냥꾼으로 보기 쉽지만 진짜 사냥꾼은 인디아이다. 표적이 방심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하게 숨죽이며 기다리는 (관객마저 눈치 채지 못하게) 진짜 사냥꾼. 인디아에 비하면 찰리는 어설픈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냥의 인내를 배운 장면이 관객들에게 주는 힌트였지 싶다.

또한 <스토커>는 인디아의 성장이야기이다. 그 성장은 찰리와의 피아노 연주에서 성적으로 눈을 뜬 순간, 그리고 찰리를 죽인 순간에서 급 도약한다. 왜 죽였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다만 많은 이들의 해석처럼 데미안의 이 문구를 빌려오면 어느 정도는 분명해지긴 한다. 시체와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냉동고,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불안한 조명, 지하실로 가는 동안의 불안은 자신의 본능을 발견하는 과정의 혼란으로 해석되고 냉동고 안에서 발견한 시체와 아이스크림은 소녀가 눈 뜬 성욕과 살욕으로 해석된다.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과 태연하게 살인을 행하는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인디아가 신발을 바꿔 신은 매혹적인 모습처럼 성장은 그렇게 이루어진 것.

 

 

key: 박찬욱, 사냥꾼, 할리우드

 

(포스터 및 스틸: Daum)

 

Posted by 김귤c